국비공모사업에 선정됐다는 보도자료에는 대개 큰 숫자가 등장한다. 국비 얼마를 확보했고, 총사업비가 얼마이며, 언제 착공하고 준공하는지가 앞에 놓인다. 지자체장과 관계자들이 현수막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주민이 궁금한 것은 사업비의 크기가 아니다. 이 사업으로 누가 일자리를 얻고, 어느 상점의 매출이 늘며, 지역에 머무는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다.
필자는 국비공모사업의 선정 평가와 심의, 지자체 공모사업 컨설팅을 여러 현장에서 지켜봤다. 선정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지역 문제를 분석하고 중앙부처의 정책 방향과 연결하며, 지방비 부담과 운영계획까지 설계해야 한다. 다만 선정 이후의 현장을 보면 공모 대응에 들인 정성과 운영 준비에 들인 정성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국비는 목적지가 아니라 시간을 벌어주는 마중물이다
국비공모사업은 지역의 부족한 재원을 보완해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게 하는 장치다. 지역이 자체 예산만으로 하기 어려운 실험을 시작하고, 주민과 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건물을 짓거나 장비를 구입하는 데 예산을 모두 사용하면 사업이 끝난 뒤 지역에 남는 것은 관리비와 빈 공간일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2026년도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 원을 ‘시설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일자리·주거·돌봄 등 정주 여건 개선 사업에 기금 활용을 확대하고, 주민 중심의 사업체 참여와 지역 재투자 여부를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제시했다.
시설이 필요한 지역도 있다. 문제는 시설을 지은 뒤 누가 운영하고, 어떤 고객을 끌어오며, 수익과 공공성을 어떻게 조화할지 빠져 있는 경우다. 관광센터를 지어도 방문객이 머물 프로그램이 없고, 창업공간을 마련해도 입주할 기업과 판로가 없으면 건물은 지역경제를 바꾸지 못한다.
왜 국비공모사업이 치적 사업으로 흐르는가
지자체장이 국비 확보를 성과로 알리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 국비를 확보한 일은 행정의 중요한 성과다. 다만 선정 발표와 착공식, 준공식이 사업의 전부가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지자체는 임기 안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건물, 광장, 주차장, 조형물은 사진으로 설명하기 쉽다. 반면 상인 역량, 청년의 정착, 재방문율, 지역 내 소비 순환처럼 시간이 필요한 성과는 발표하기 어렵다. 이 틈에서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보다 공모에 당첨되기 쉬운 사업이 앞서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우리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가’보다 ‘이번에 어떤 공모가 나왔는가’를 먼저 묻는 장면을 종종 본다. 공모사업의 목적에 지역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사업계획서에는 주민 참여와 운영 주체를 넣지만 실제 협의는 뒤늦게 시작한다. 사업비를 확보한 뒤 운영자를 찾는 순서가 반복되면 지역 활성화는 행정 일정에 밀려난다.
성과는 시설 준공이 아니라 지역의 작동으로 판단해야 한다
좋은 국비공모사업은 네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이 사업이 해결하려는 지역 문제는 무엇인지 분명해야 한다. 인구가 줄어서인지,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서인지, 관광객이 지나가기만 해서인지 문제를 좁혀야 한다.
둘째, 사업 종료 뒤 운영 주체가 있어야 한다. 지자체가 계속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것인지, 지역기업과 주민조직이 맡을 것인지, 수익을 통해 일부 비용을 충당할 것인지 시작 전에 결정해야 한다.
셋째, 지역 안에서 돈과 사람이 순환해야 한다. 방문객을 공간 안에 묶어두는 사업보다 주변 상점과 숙박업체, 로컬기업으로 소비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관광사업이라면 방문객 수보다 체류시간, 재방문, 지역 매출, 참여 사업자 수를 함께 봐야 한다.
넷째, 실패 가능성까지 계획에 담아야 한다. 목표 이용객이 오지 않거나 운영자가 바뀌었을 때 어떻게 조정할지, 사업을 축소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지 정해두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계획은 준공 뒤 빠르게 낡는다.
지방보조사업은 매년 성과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예산편성에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 지속사업은 3년마다 유지 필요성도 평가한다. 행정안전부는 미흡한 지방보조사업에 대해 예산 삭감·지원 중단·사업 폐지 등이 가능하도록 성과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국비공모사업도 이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평가해야 한다
국비공모사업의 성과는 보도자료의 숫자보다 사업이 끝난 뒤 지역에 남은 역량으로 확인된다. 한 명의 청년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는지, 빈 점포가 다시 운영되는지, 상인이 스스로 고객을 만들 수 있게 됐는지, 외부 방문객이 지역의 다른 공간까지 이동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2026년 지방소멸대응기금 개편에서도 성과 중심 배분과 주민 체감형 사업이 강조됐다. 정부는 투자계획의 완성도에 따라 배분액을 차등화하고, 지역 간 연계와 주민 참여를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자체장은 국비를 많이 확보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확보한 예산이 지역의 자립과 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공무원은 선정 이후의 운영을 설계해야 하고, 주민은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라 기획과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비공모사업은 지자체장의 치적을 위한 트로피가 아니다. 지역이 스스로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잠시 물을 대는 마중물이다. 물이 들어온 뒤 우물이 살아나는지는 지역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봤는지, 사람과 운영을 얼마나 준비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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