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활성화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앵커스토어를 만들고 팝업스토어를 운영하자”는 제안은 빠지지 않는다. 예산으로 공간을 조성하고 간판을 달면 지역의 외형은 빠르게 달라진다. 하지만 몇 달 뒤 다시 찾아가면 간판만 남고 주변 골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공간과 행사가 사람의 이동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앵커스토어와 팝업스토어를 계획할 때 사업 종료 뒤의 평일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행사 없는 날에도 누가 문을 열고, 어떤 상품을 팔며, 방문객을 주변 점포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브랜드는 행사 당일의 사진보다 평일의 운영에서 확인된다.
앵커스토어는 가장 큰 매장이 아니라 지역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매장이다
앵커스토어는 규모가 크거나 인테리어가 화려한 점포를 뜻하지 않는다. 그 지역에 왜 와야 하는지,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 어디로 이동하면 좋은지를 방문객에게 설명하는 매장이다.
지역의 특산품과 생산자 이야기, 골목의 역사, 지역 창업자의 상품, 주변 관광자원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 보여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상품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게 하거나, 지역의 다른 점포와 장소를 안내해야 한다. 앵커스토어에서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인근 카페와 시장, 문화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면 한 점포의 매출은 상권 전체의 소비로 확장된다.
앵커스토어를 선정할 때는 공간보다 운영자를 먼저 살펴야 한다. 지역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지,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운영할 수 있는지, 주변 상인과 협업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공건물에 지역상품을 채워 넣는 것만으로는 앵커스토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팝업스토어는 빈 공간을 채우는 행사가 아니라 시장을 확인하는 실험장이다
팝업스토어를 유명 브랜드를 초청하는 행사로만 이해하면 지역에는 사진과 일회성 방문객만 남는다. 지역브랜드를 만드는 팝업은 무엇이 팔리는지, 어떤 이야기에 고객이 반응하는지, 어느 계층이 오래 머무는지를 확인하는 현장 실험이어야 한다.
지역 생산자와 청년 창업자, 기존 상인, 외부 브랜드가 함께 계절상품과 체험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간편식, 골목의 역사와 연결한 전시, 지역 창작자의 생활상품처럼 장소의 특성이 드러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외부 브랜드의 인지도를 빌리더라도 지역의 상품과 공간으로 고객이 이동하는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팝업이 끝난 뒤에는 방문객 수만 기록해서는 부족하다. 어떤 상품이 많이 팔렸는지, 고객이 어느 공간으로 이동했는지, 체류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자료가 다음 팝업의 주제와 상품, 운영시간을 바꾸는 데 활용돼야 한다. 한 번의 흥행보다 다음 방문을 만들어 내는 개선 과정이 더 중요하다.
두 공간을 상권 전체의 동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앵커스토어와 팝업스토어가 각각 잘 운영돼도 서로 고립돼 있으면 지역의 변화는 제한적이다. 앵커스토어에서 시작해 팝업스토어와 전통시장, 카페, 관광지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로컬 브런치 코스’, ‘시장 미식 투어’, ‘지역 선물 지도’, ‘골목 체험 패스’처럼 고객이 하루의 시간을 계획할 수 있는 상품이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공동쿠폰과 예약, 품질관리, 홍보, 수익배분을 담당할 운영조직이 필요하다. 누가 고객 문의를 받고, 누가 상품을 관리하며, 참여 점포에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정하지 않으면 협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역상권을 하나의 비즈니스 단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지자체의 역할도 시설 조성에서 운영 지원으로 넓어져야 한다. 공공은 초기 공간과 실험 비용을 지원하고, 민간은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책임져야 한다. 상인조직은 현장의 의견을 조정하고, 운영조직은 방문객과 매출 데이터를 관리해야 한다. 사업계획서에 주민 참여를 적는 것보다 실제 운영회의와 수익배분 규칙을 먼저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지역브랜드는 이름을 붙인 시설이 아니라 방문객의 기억 속에 남는 선택 이유다. 앵커스토어는 지역의 얼굴이고, 팝업스토어는 새로운 만남을 만드는 기회다. 두 공간이 골목의 점포와 사람, 상품, 관광자원으로 이어질 때 지역은 방문할 곳을 넘어 다시 찾을 이유를 갖게 된다.
앵커스토어와 팝업스토어를 추진하는 지자체라면 세 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평일에도 운영되는가. 방문객이 다음 점포로 이동할 이유가 있는가. 사업 종료 뒤 남는 운영자와 상품, 고객 데이터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공간 조성은 랜드 전략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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