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형상점가 상인회 회의가 끝난 뒤의 풍경은 대체로 비슷하다. 회의에 참석한 몇 명이 의자를 정리하고, 회장은 담당 공무원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단체대화방에는 회의 내용이 올라오지만, 다음 일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인회장에게 “회원들이 잘 참여하느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관심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말은 회장의 책임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상인회가 아직 한 사람의 성실함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장이 바쁘거나 자리를 비우면 회의가 미뤄지고, 사업자료는 찾기 어려워지고, 이미 논의한 내용도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앞선 ①편에서는 골목형상점가 지정이 활성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짚었다. ②편에서는 상인에게 참여를 요구하기 전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살펴봤다. ③편에서 더 깊이 봐야 할 대목은 그 참여를 담아낼 조직의 틀이다.


상인 수가 많다고 조직이 강한 것은 아니다

상인회가 회원 명단을 갖고 있다고 해서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회원의 의견이 어떻게 모이고, 누가 결정하며, 결정된 일이 어떻게 실행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골목에는 음식점, 소매점, 서비스업, 숙박업이 함께 자리한다. 영업시간도 다르고 고객을 만나는 방식도 다르다. 같은 사업을 두고도 점포마다 기대하는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의 때마다 목소리를 내는 몇 명의 의견이 전체 상인의 뜻처럼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생긴다. 참석하지 못한 상인은 결정 내용을 나중에 통보받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도 낮아진다. 회의에 나온 사람만 조직의 주인이 되는 구조다.

대표성은 회원 수를 세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인의 의견을 어떻게 받을지, 업종별로 다른 불편을 어떻게 확인할지, 결정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할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단체대화방에 공지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읽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설명하고, 반대 의견이 있을 때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까지 조직의 일로 봐야 한다.

김용한 박사는 『골목형상점가 지정과 활성화의 정석』에서 상인조직을 골목상권 활성화의 중요한 기반으로 다뤘다.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활성화 지원의 역설』에서도 지원사업의 성패가 상인조직의 실행력과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인터뷰에서 상인회 운영을 평가할 때 회장 개인의 열정부터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장님이 바뀌어도 돌아가는가를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 짧은 질문 안에 상인조직의 지속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담겨 있다.


회장이 모든 일을 잘하는 것이 조직의 능력은 아니다

상인회장이 사업계획서를 잘 쓰고, 행정기관과 소통하고, 회원 연락까지 도맡으면 당장은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른 상인은 점점 구경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업무를 나누는 일은 회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 안에 경험을 축적하고 다음 운영자를 만드는 일이다.

총무는 회계자료와 회의기록을 관리하고, 홍보 담당자는 점포 정보와 온라인 채널을 관리할 수 있다. 현장에 익숙한 상인은 골목의 불편과 고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 젊은 상인에게 디지털 업무를 모두 맡기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은 잘 찍지만 고객 응대가 서툰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온라인 활용은 익숙하지 않아도 골목의 역사와 단골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상인이 있을 수 있다.

일을 나눌 때는 직함보다 실제 능력과 시간을 봐야 한다. 그리고 맡은 업무는 개인 휴대전화가 아니라 상인회 공동자료로 남겨야 한다. 거래처, 홍보물, 사업비 지출, 회의 결정사항이 한 사람의 파일과 대화방에만 있다면 회장이 바뀌는 순간 조직의 기억도 사라진다.

상인회가 오래가는 지역에서는 거창한 조직도를 보기 어렵다. 대신 회의록이 남아 있고, 업무 담당자가 정해져 있으며,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자료가 정리돼 있다. 조직의 실력은 말보다 이런 흔적에서 드러난다.

[로컬넥스트뉴스 특집: 골목형상점가 2,000개 시대, 그 과제는?] ③ 골목형상점가의 성패는 상인조직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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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피하는 상인회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한다

상인조직에서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공동행사를 원하는 상인과 환경 개선을 먼저 하자는 상인이 생긴다. 비용을 함께 부담하자는 의견과 공공지원금 안에서 해결하자는 의견도 부딪힌다.

문제는 갈등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갈등을 다룰 절차가 없다는 데 있다.

상인회가 갈등을 피하려고 결정을 미루면 아무 사업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반대로 회장과 임원 몇 명이 서둘러 결정하면 나중에 회원들의 반발을 부른다. 사업의 목적과 대상, 비용 부담, 기대효과를 미리 공개하고, 반대 의견을 기록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반대하는 상인의 말을 귀찮은 민원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그 안에는 사업의 허점이 들어 있을 수 있다. 행사 날짜가 영업에 지장을 주는지, 홍보 대상이 일부 점포에 치우치지는 않는지, 시설 개선 이후 관리비가 누가 부담할지 확인해야 한다.

김 박사는 상인회 갈등이 의견 차이보다 불투명한 과정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누가 사업을 제안했는지, 왜 그 사업을 선택했는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무엇을 바꿀 것인지 공개하면 갈등의 방향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모든 상인이 같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한 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조직이면 된다.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남는 조직이어야 한다

골목형상점가 사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회의가 잦아지고, 사업비가 집행되는 동안에는 여러 사람이 움직인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정산이 마무리되면 다시 회장 한 사람만 남는다.

지원사업을 받는 일과 상권을 운영하는 일은 다르다. 사업비가 있을 때만 가능한 행사는 상권의 운영체계가 되기 어렵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을 사업 안에서 시험해야 한다.

공동홍보를 했다면 이후에도 점포 정보를 누가 관리할지 정해야 한다. 골목지도를 만들었다면 영업시간과 점포 변경사항을 누가 수정할지 정해야 한다. 고객 설문을 진행했다면 그 결과를 다음 사업에 어떻게 반영할지 기록해야 한다.

성과를 행사 참여 인원만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고객이 골목을 찾는 이유가 생겼는지, 온라인에서 점포를 찾기 쉬워졌는지, 상인들이 다음 사업을 스스로 제안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지정과 예산 집행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행정이 상인회를 대신 운영할 수는 없지만, 조직이 스스로 운영될 수 있도록 회계관리, 회의 진행, 갈등 조정, 사업평가를 지원할 수는 있다.

지정 후 점검할 때도 사업비를 제대로 썼는지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회장 외에 일을 맡는 사람이 있는지, 결정사항이 회원에게 공유되는지, 사업자료가 공동으로 관리되는지, 다음 운영자를 키우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골목형상점가의 숫자가 늘어나는 동안 상인조직의 운영 방식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지정서를 받은 뒤에도 회의가 회장에게만 의존하고, 사업의 기억이 개인에게만 남아 있다면 상권은 지원사업이 끝나는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상인조직은 행정기관과 상인을 연결하는 연락창구가 아니다. 골목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여러 의견을 조정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변화를 실행하는 운영주체다.

골목형상점가의 성패는 현판을 다는 날 결정되지 않는다. 회의가 끝난 뒤 회장 외에 누가 움직이는지, 다음 회의에서 지난 결정이 어떻게 확인되는지, 사업이 끝난 뒤에도 남은 일이 이어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헌신은 상인회를 시작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골목을 오래 움직이는 힘은 여러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구조에서 나온다.

로컬넥스트뉴스로컬넥스트뉴스 | [로컬넥스트뉴스 특집: 골목형상점가 2,000개 시대, 그 과제는?] ③ 골목형상점가의 성패는 상인조직에서 갈린다골목형상점가 지정 이후 상권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지원금이나 행사 횟수가 아니라 상인조직의 운영 역량이다. 회장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의견을 모으고, 일을 나누고, 결과를 기록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지정이 실제 상권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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