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만난다. 새로 단장한 건물 앞에는 큼지막한 사업 안내판이 서 있지만 문은 잠겨 있다. 청년창업 공간에는 입주자가 없고, 관광객을 위해 만든 체험시설은 예약이 들어오는 날만 운영된다. 주민들은 그 건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

지방소멸은 인구통계표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동네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줄고, 자주 가던 가게가 문을 닫으며, 사람을 이어주던 모임이 사라질 때 지역은 이미 약해지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기능과 관계가 먼저 무너지고, 인구 감소는 그 결과로 뒤따르기도 한다.


● 사람의 빈자리를 건물로 채울 수는 없다

문제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 다시 건물과 사업부터 넣는 정책의 순서다. 빈집이 생기면 리모델링하고, 폐교가 나오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며, 상권이 침체하면 거리와 간판을 정비한다. 눈에 보이는 공간은 만들기 쉽고 예산 집행도 분명하다. 준공 사진과 이용 면적도 성과로 제시하기 편하다.

하지만 건물을 고친다고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카페를 만들었다고 손님이 생기지 않으며, 공유오피스를 열었다고 청년이 지역에 남지 않는다. 방문할 이유, 머물 일, 돈을 쓸 대상, 다시 만날 사람이 없으면 새 공간은 잠시 구경하는 시설에 그친다.

나는 현장 컨설팅에서 “이 공간은 누가 운영합니까?”라고 자주 묻는다. 담당자가 잠시 머뭇거리거나 위탁운영을 검토 중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물 이름과 내부 구성은 정해졌는데 운영할 사람과 수익구조가 뒤로 밀린 것이다. 이 순서로 출발한 사업은 지원이 끝난 뒤 문을 여는 시간부터 줄어든다.


● 시설보다 이용 장면을 먼저 그려야 한다

지역사업은 건물 배치도가 아니라 사람의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가 이곳에 올 것인지, 무엇을 하며 몇 시간 머물 것인지, 주변 가게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부터 그려야 한다. 평일 오후에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방문자가 식사하고 장을 볼 곳이 있는지, 주민과 외부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가령 빈집을 숙소로 바꾸기 전에 실제로 머물 사람을 찾아야 한다. 한 달간 지역에서 일해보려는 직장인,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주말마다 농촌을 찾는 가족처럼 수요자의 생활 장면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다음 숙박, 일, 식사, 이동, 지역 활동을 연결해야 한다. 공간은 이 경험을 담는 그릇로 충분하다.

운영자도 준공 이후에 모집해서는 늦다. 기획 단계부터 지역 상인, 주민조직, 로컬기업가가 참여해 운영시간과 프로그램, 가격, 수익 배분을 정해야 한다. 공간을 맡길 사람을 찾는 수준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키울 사람을 사업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 준공률이 아니라 지역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방문객 숫자만으로는 지역의 변화를 읽기 어렵다.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주변 점포에서 얼마를 소비했는지, 다시 찾았는지, 지역의 일과 관계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입주기업 수보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영업하는 기업이 몇 곳인지가 더 중요하다.

지역은 한 번의 대형사업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작은 가게 한 곳이 오래 버티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 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운영자가 지역에서 수입을 얻는 변화가 쌓여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이런 움직임이 지역을 지탱한다.

사람이 떠난 지역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빈 건물이 아니다. 다시 찾아오고, 머물고, 일하고, 관계를 이어갈 이유다. 지역정책은 무엇을 지을 것인가보다 누구의 어떤 활동을 오래 남길 것인가부터 물어야 한다.


[필자 소개] 김용한 박사 / 엠아이넥스트/로컬넥스트 대표
국비공모, 로컬관광, 생활인구 전략, 지역상권, 도시재생 분야에서 지자체와 공공기관 대상 연구용역, 컨설팅, 강의, 평가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국비공모사업 기획과 제안서 전략, 발표평가 대응, 선정 이후 실행관리 분야에서 현장 중심의 컨설팅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비공모사업 이렇게 준비하라!』를 비롯해 지역정책과 로컬 활성화 관련 저술 활동을 해 왔다. 현재 엠아이넥스트, 로컬넥스트, 국비공모랩을 통해 지자체의 전략적 공모 준비와 지역 맞춤형 사업기획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misiceo@naver.com

로컬넥스트뉴스로컬넥스트뉴스 | [로컬넥스트 칼럼] ① 지방소멸은 인구가 줄어서만 시작되지 않는다지방소멸은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하는 순간보다 지역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 활동이 사라질 때 먼저 시작된다. 빈 공간을 서둘러 채우기보다 누가, 왜, 어떻게 이용하고 운영할지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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