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전자기기를 살 때 소비자에게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다. 이미 인터넷에는 제품 사양과 사용 후기, 비교 영상이 넘쳐난다. 소비자가 마지막까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그 제품이 자신의 생활환경과 취향에 맞는지 직접 판단할 시간이다.
헤드폰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유튜브 리뷰를 보고, 블로그와 커뮤니티 후기를 찾아본다. 여러 제품을 비교한 뒤에도 구매 버튼 앞에서는 다시 망설인다. 음질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오래 착용해도 불편하지 않은지, 집이나 작업실에서 사용했을 때도 만족스러운지는 매장에서 잠깐 들어보는 것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퀀타이즈랩스의 ‘루킷’은 이 구매 불안을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고관여 전자기기를 3일부터 30일까지 빌려 고객의 집이나 작업실에서 충분히 사용한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여행이나 행사, 촬영처럼 특정 기간에만 장비가 필요한 고객도 이용할 수 있다.
정경민 대표는 루킷을 단순한 렌탈 서비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가’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커머스 안에 넣는 서비스라고 말한다.
추천보다 직접 사용이 필요했던 이유
정 대표는 유니스트(UNIST)에서 기계공학과 산업공학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작곡을 하면서 헤드폰과 앰프 등 음향기기에 관심을 가졌고, 버클리 하스 프런티어(Berkeley Haas Frontier)와 카이스트 아이피영재기업인교육원(KAIST IP영재기업인교육원)을 수료했다. 씨엔티테크 액셀러레이팅 사업부에서 근무한 뒤 현재 퀀타이즈랩스의 전략과 기획, 마케팅, 세일즈 전반을 이끌고 있다.
루킷의 출발점은 거창한 시장조사보다 개인적인 불편에 가까웠다.
“헤드폰이나 앰프는 스펙과 후기를 보는 것만으로 나에게 맞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매장에서 몇 분 들어보는 것도 부족했습니다. 수십만 원을 쓰기 전에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늘 불편했습니다.”
처음부터 대여 플랫폼을 만든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개인의 음향 취향을 분석해 적합한 기기를 추천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구상했다. 고객의 관심은 확인했지만, 정 대표가 기대한 만큼 강한 구매 수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범용 AI 모델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정 대표는 이때 사업의 질문을 바꿨다. ‘어떤 제품이 맞는지 더 잘 알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면 구매 불안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객에게 더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정 대표의 창업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완벽한 답을 찾은 뒤 움직이기보다 작은 가설을 먼저 실행하고 고객 반응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는 “배우는 속도가 경쟁력”이라며 “가설이 틀렸다면 오래 버티기보다 빨리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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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실패와 소유의 비효율을 함께 줄인다
루킷을 찾는 고객은 크게 두 부류다. 제품을 사고 싶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고객과, 제품을 오래 소유할 필요가 없는 고객이다.
첫 번째 고객에게 고가 전자기기의 잘못된 구매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중고로 판매하면 가격 손실이 발생하고, 판매 글을 올리고 구매자를 만나 제품을 보내는 과정에도 시간과 수고가 들어간다. 루킷은 이 비용을 ‘구매 실패 비용’으로 바라본다.
두 번째 고객은 여행이나 행사, 촬영을 위해 며칠 동안만 카메라나 음향장비가 필요한 사람이다. 이들에게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사용기간에 비해 과도한 지출이 될 수 있다.
정 대표는 “구매 전 체험은 실패 비용을 줄이고, 초단기 대여는 소유의 비효율을 줄인다”며 “고객의 상황은 달라도 필요한 만큼 경험한다는 점은 같다”고 설명했다.
기존 렌탈 서비스와도 이용 방식이 다르다. 정수기처럼 장기간 약정을 맺는 렌탈은 오래 사용하는 데 초점이 있다. 오프라인 매장은 체험시간이 짧고 고객의 실제 생활공간과 다르다. 중고 거래는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제품 상태와 거래 과정의 위험을 고객이 직접 감당해야 한다.
루킷은 고객이 제품과 이용기간을 선택하면 검수를 마친 제품을 배송한다. 고객은 자신의 공간에서 사용한 뒤 반납일에 제품을 상자에 담아 문 앞에 두면 된다. 회수된 제품은 기능 점검과 세척·위생 처리, 구성품 확인을 거쳐 다시 고객에게 제공된다.
정 대표가 정한 검수 기준은 분명하다.
“다음 고객이 받았을 때 ‘새 제품 같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낯선 서비스일수록 신뢰는 작은 디테일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렌탈 사업에서는 재고 운영도 중요하다. 고가 제품을 많이 확보해도 회전하지 않으면 자금이 묶인다. 반대로 수요가 높은 제품이 부족하면 고객을 놓친다. 퀀타이즈랩스는 제품별 이용률과 수익성을 확인하면서 라인업을 조정한다. 이용이 많은 제품은 늘리고, 반응이 낮은 제품은 빠르게 정리한다. 새로운 제품군도 처음부터 크게 확장하지 않고 작은 규모로 시험한다.
편지 한 통이 확인한 체험 커머스의 가능성
초기 서비스에서 고객 한 명의 반응은 사업의 방향을 확인하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루킷 서비스 초기에 여러 음향기기 중 무엇을 구매할지 고민하던 고객이 제품을 빌렸다. 사용을 마친 뒤 반납한 상자를 열어보니 장문의 편지와 사탕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루킷 덕분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 대표는 “우리가 누군가의 구매 판단에 실제로 도움이 됐다는 것을 처음 강하게 느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루킷이 대여에서 멈출 필요가 없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고객이 제품을 빌리고 반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체험한 제품을 구매하거나 다른 제품과 비교할 수 있다면 대여는 구매 결정의 입구가 된다.
루킷은 현재 검수를 마친 리퍼브 제품을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체험한 제품을 새 상품이나 리퍼브 상품 구매로 연결하는 기능도 준비 중이다. 제품을 검색하고 바로 구매하는 기존 온라인 커머스와 달리, 직접 사용하고 비교한 뒤 확신을 갖고 구매하는 흐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퀀타이즈랩스는 2025년 팁스(TIPS)에 선정됐으며, 루킷은 2026년 3월 25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2026년 8월 현재 6명의 팀이 함께하고 있다. 헤드폰과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 앰프 등 오디오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전자기기로 제품군을 넓힐 계획이다.
정 대표의 목표는 대여상품을 많이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1년 안에는 전자기기 카테고리를 확대하고, 체험 제품을 구매로 연결하는 기능을 선보일 예정이다. 3년 뒤에는 특정 품목을 빌려주는 플랫폼을 넘어 전자기기 커머스에서 고객이 겪는 문제를 계속 해결하는 팀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소비 장면은 분명하다.
“고민되는 전자기기가 있을 때 가장 먼저 루킷이 떠올랐으면 합니다. ‘사기 전에 루킷에서 써본다’가 상식이 되는 것, 그게 저희가 만들고 싶은 문화입니다.”
전자기기 시장에는 정보가 부족하지 않다. 다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소비자의 고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루킷은 설명을 더하는 대신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정 대표는 소비자에게 이렇게 권했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전자기기를 앞에 두고 검색만 계속하고 있다면, 사기 전에 며칠만 직접 써보시기 바랍니다. 후회 없는 선택은 검색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써보고 결정하는 소비문화, 루킷이 만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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