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형상점가 지원사업의 격차는 사업비 규모에 그치지 않는다. 지원을 받은 골목은 상권 진단과 공동사업 경험, 행정 네트워크, 다음 공모를 준비할 자료를 쌓지만 지원받지 못한 골목은 신청 단계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제 정책은 선정된 골목에 예산을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원 전 단계의 조직화와 준비 역량까지 함께 키워야 한다.

골목형상점가 지원사업 공고가 나오면 상인회 사무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담당자가 정해지고,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지고, 점포 사진과 상권 자료가 모인다. 

선정된 뒤에는 공동 홍보물과 행사 일정이 생긴다. 반면 공모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선정되지 않은 골목은 며칠 뒤 다시 평소의 영업으로 돌아간다. 어느 쪽이 더 열심히 일했는지와 별개로, 두 골목의 다음 출발선은 이미 달라져 있다.


앞선 ①편에서는 골목형상점가 지정이 활성화의 완성이 아니라 정책에 진입하는 출발점이라고 짚었다. ②편에서는 지정 이후 상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살폈다. ③편에서는 참여를 담아낼 상인조직의 대표성, 역할 분담, 기록과 지속 운영을 다뤘다. ④편에서 볼 문제는 그 이후다. 지원사업에 들어간 골목과 문턱을 넘지 못한 골목 사이에서 격차가 어떻게 쌓이는가다.


지원금보다 먼저 벌어지는 차이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되면 온누리상품권 가맹과 각종 공모사업 참여의 길이 열린다. 전통시장법도 골목형상점가에 대해 활성화 기본계획, 실태조사, 활성화 지원과 관련된 제도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정은 상인들에게 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다. 다만 자격이 생겼다고 사업계획서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격차는 지원금이 입금되는 날보다 훨씬 앞서 시작된다. 지원을 받은 골목은 사업을 준비하면서 점포 명단을 정리하고, 상권의 문제를 확인하고, 고객을 불러올 방법을 논의한다. 행사나 홍보가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무엇이 부족했는지 기록이 남는다. 다음 사업을 신청할 때 활용할 사진과 실적, 참여자 명단, 고객 반응도 축적된다.

지원받지 못한 골목은 이런 과정을 경험할 기회가 적다. 상인회장이 공고를 늦게 알거나,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사람이 없거나, 자부담과 회의 일정에 부담을 느끼면 신청 자체를 포기한다. 

선정되지 않은 뒤에도 탈락 원인을 분석하고 보완할 지원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지원이 없다는 사실보다 준비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원받은 골목도 모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원사업을 받은 골목의 사정이 늘 좋은 것도 아니다. 행사 기간에 방문객이 늘었지만 특정 점포에만 사람이 몰릴 수 있다.

 예쁜 간판과 포토존은 생겼지만 고객이 다시 찾아올 이유는 부족할 수 있다. 상인회가 외부 용역업체에 대부분의 일을 맡긴 뒤 사업이 끝나면, 내부에는 결과보고서만 남는 장면도 있다.

서울시는 2026년 골목형상점가 육성 지원사업을 통해 총 75곳을 선정하고, 상권별로 2천만~4천만원의 공동마케팅 사업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동마케팅과 간이시설물 운영은 분명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사업비가 상인들의 공동 판단과 실행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원이 끝난 뒤 골목에 남는 것은 행사 사진과 제작물뿐일 수 있다. 


김용한 박사는 『골목형상점가 지정과 활성화의 정석』에서 지정이 매출과 고객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장치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지정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출발선이며, 고객의 재방문과 점포 간 공동운영은 별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지원의 방향을 사업비 집행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원이 상인들의 논의와 실행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상권은 사업비에 익숙해진다. 전문가와 행정이 사업을 대신 완성하는 동안 상인조직이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힘을 갖지 못하면, 다음 공모에 선정되어도 같은 의존 구조가 반복된다.

[로컬넥스트뉴스 특집: 골목형상점가 2,000개 시대, 그 과제는?] ④ 지원받은 골목만 살아남는가


미지원 골목을 ‘탈락한 골목’으로 부르면 안 된다

지원받지 못한 골목을 의지가 부족한 곳으로 분류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공모사업은 정해진 기간 안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계획서의 형식과 평가 기준을 맞춰야 한다. 

상인회장이 생업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사업계획서, 예산서, 증빙자료, 공동 동의서를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어떤 골목은 상권의 문제가 더 심각해서 사업 준비에 시간을 쓰기 어렵다. 어떤 골목은 상인조직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 신청 자격에 도달하지 못한다. 지원이 필요한 곳일수록 지원사업에 접근하기 어려운 역설이 생긴다.

정책이 이전 실적과 사업 수행 경험이 많은 골목을 계속 선택하면 성과관리는 편해진다. 하지만 같은 골목에 지원이 반복되고, 준비된 조직만 다음 기회를 차지하면 지역 안에서 상권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성과가 좋은 곳을 돕는 일과 아직 성과를 만들지 못한 곳이 준비하도록 돕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지원의 문턱 앞에 ‘준비 단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와 지원기관은 지원사업 선정 전 단계에서 미지원 골목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한 번의 설명회로 끝내지 말고 최소한 다음 네 가지는 제공해야 한다.


첫째, 상권의 점포와 고객, 입지, 업종 구성을 함께 확인하는 기초 진단이 필요하다. 

둘째, 상인회 연락망과 역할을 정리해 공모사업을 준비할 담당자를 세워야 한다. 

셋째, 큰 행사를 기획하기 전에 공동홍보나 고객조사처럼 작은 실행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넷째, 탈락한 골목에는 평가 결과와 보완 방향을 알려 다음 신청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원받은 골목에도 사후 조건이 필요하다. 사업 종료 뒤 누가 온라인 정보를 관리하는지, 행사 결과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다음 사업을 누가 준비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업비를 모두 집행했는지만 보는 평가로는 조직의 변화를 확인하기 어렵다.

김 박사는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활성화 지원의 역설』에서 지원이 많아질수록 상권의 자립성이 커지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지원의 횟수보다 지원 이후 남은 사람이 중요하다. 회의에 참여하는 상인이 늘었는지, 회장이 아닌 다른 상인도 업무를 맡는지, 고객과 매출의 변화를 확인할 자료가 쌓였는지를 봐야 한다.


골목형상점가 2,000개 시대에 필요한 정책은 모든 골목에 똑같은 사업비를 나누는 방식이 아니다. 이미 실행 경험이 있는 골목에는 성과 확산과 자립을 지원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골목에는 조직화와 진단, 작은 실행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지원받은 골목과 받지 못한 골목의 차이를 개인의 노력으로만 설명하면 정책은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공모에 선정된 골목에는 성과를 요구하고, 선정되지 못한 골목에는 다음 기회를 준비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골목상권의 미래는 누가 먼저 지원금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지원의 경험이 상인조직의 힘으로 남았는지에 달려 있다.


김용한 박사는 경영학박사이자 엠아이넥스트 대표로 로컬상권·전통시장·지역관광·국비공모 분야의 현장 컨설팅과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골목형상점가 지정과 활성화의 정석』,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활성화 지원의 역설』 등이 있다.

로컬넥스트뉴스로컬넥스트뉴스 | [로컬넥스트뉴스 특집: 골목형상점가 2,000개 시대, 그 과제는?] ④ 지원받은 골목만 살아남는가골목형상점가 지원사업의 격차는 사업비 규모에 그치지 않는다. 지원을 받은 골목은 상권 진단과 공동사업 경험, 행정 네트워크, 다음 공모를 준비할 자료를 쌓지만 지원받지 못한 골목은 신청 단계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제 정책은 선정된 골목에 예산을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원 전 단계의 조직화와 준비 역량까지 함께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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