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채용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신입보다 경력’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6월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채용시장의 특징과 시사점 조사’를 보면 민간 채용 플랫폼에 등록된 채용공고 14만4,181건 가운데 경력직만 원하는 공고가 82.0%였다. 신입과 경력을 함께 뽑는 공고는 15.4%, 신입만 채용하는 공고는 2.6%에 불과했다. 대졸 청년 구직자의 53.9%도 ‘경력 중심의 채용’을 취업 진입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AI 등 자동화로 인한 고용규모 축소’를 지적한 응답도 26.5%였다.
여기에서 AI가 신입 채용 감소의 모든 원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경기 상황, 수시채용 확대, 즉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 선호 등이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AI가 신입사원이 담당해 온 업무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AI가 먼저 가져가는 것은 ‘신입의 첫 업무’다
회사에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은 자료를 찾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회의록을 쓰고,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면서 일을 배웠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정보를 중요하게 보는지, 선배는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고서는 어떻게 의사결정으로 연결되는지를 익혔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영역에 강하다. 검색과 요약, 엑셀 분석, 문서 초안, 번역, 코딩까지 짧은 시간에 처리한다.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가입자 행정통계를 분석한 결과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1만1천 개 감소했는데, 이 가운데 20만8천 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정보서비스처럼 AI가 초급 업무를 수행하기 쉬운 분야에서 청년고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반면 한국은행은 AI가 경력자의 암묵적 지식과 사회적 기술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혹이 생긴다. 신입 두세 명이 하던 일을 경력자 한 명과 AI가 처리할 수 있다면 굳이 신입을 뽑아 교육해야 하느냐는 판단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이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 신입을 뽑지 않으면 내일의 경력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경력자는 시장에서 무한히 공급되는 자원이 아니다.
신입사원이 작은 업무를 맡고, 고객을 만나고, 실수하고, 선배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3년차와 5년차 인재가 된다. 모든 기업이 즉시 투입할 경력자만 찾기 시작하면 이 성장의 입구가 좁아진다.
한국은행의 별도 연구에서는 경력직 채용 증가로 첫 취업이 늦어질 경우 사회초년생의 기대 생애 취업기간이 평균 2년가량 감소하고 생애소득도 13%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도 산학협력, 인턴, 교육·훈련 등을 통해 청년이 실제 업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몇 년 동안 신입 채용을 줄이면 조직의 연령과 경력 구조에 빈칸이 생긴다. 회사의 제품과 고객, 조직문화 속에서 성장한 중간관리자 후보가 부족해지고 외부 경력자 채용 의존도는 더 커진다.
신입을 줄일 것이 아니라 ‘신입의 일’을 바꿔야 한다
대한상의가 2025년 하반기 500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기업의 69.2%가 채용 때 AI 역량을 고려한다고 답했고, 51%는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했다. 동시에 기업들은 AI 인재를 단순한 개발자로만 보지 않았다. 데이터를 다루고, AI를 활용해 서비스와 업무방식을 기획·운영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요도 높았다.
여기에 앞으로의 신입사원 육성 방향이 보인다.
자료 찾기부터 가르치는 방식은 줄여야 한다. 대신 문제를 정의하고, AI에게 일을 맡기고, 결과의 오류를 검증하고, 고객과 현장에서 답을 확인한 뒤 자신의 판단을 더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신입의 업무 흐름도 ‘자료조사→정리→보고서 초안’에서 ‘문제 발견→AI 활용→검증→현장 확인→대안 제시’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2030년까지 현재 업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약 39%가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AI 확산에 대응한 기업의 주요 전략으로 기존 인력의 재교육과 역량 향상을 제시하고 있다.
AI 시대에 신입사원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입사원에게 시키던 일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을 덜 뽑는 것이 AI 전환의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배우고, 더 일찍 문제를 맡으며, 더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실무자로 성장시키는 기업이 인재 경쟁에서도 앞서갈 가능성이 높다.
신입 채용의 문을 닫을 때가 아니다. 신입을 키우는 방식을 다시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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