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가게가 문을 열고, 머물 이유가 있으며, 다시 찾을 관계가 이어질 때 작동한다.
지역 현장에 가면 새 건물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장면이 있다. 평일 오후에도 출입문이 열려 있는지, 누가 예약 전화를 받고 있는지, 찾아온 사람이 무엇을 사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지방소멸 시대, 지역은 어떻게 다시 작동해야 하는가』는 이와 같은 현장 질문에서 출발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시설과 장비가 갖춰진 체험관이 주말에만 운영되고, 예약 전화는 여러 부서를 거쳐야 연결되며, 주변 상인들은 운영시간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문제는 건물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고객을 불러오고 지역의 가게와 연결하며 수입을 만들어내는 운영이 빠져 있었다.
지방소멸은 인구 감소보다 넓은 문제다
저자들은 지방소멸을 주민 수가 줄어드는 현상에 가두지 않는다. 가게와 병원, 교통과 생활서비스가 약해지고 사업자가 수입을 만들지 못해 떠나는 과정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줄면 고객이 감소하고, 매출이 줄면 점포가 문을 닫으며, 생활서비스가 약해지면 남은 주민의 이주 가능성도 커진다.
지역에 외부 방문객이 들어와도 소비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축제 날 주차장이 가득 차도 행사장과 외부 업체에만 돈이 머물고 시장 안쪽 점포가 한산하다면 지역에 남는 것은 혼잡과 청소비일 수 있다. 방문객 수와 지역의 실질적 성과는 같은 지표가 아니다.
생활인구를 고객여정으로 설계하다
이 책은 생활인구를 단순한 통계 숫자로 다루지 않는다. 누가 어디에서 와서 얼마나 머물고, 무엇을 이용한 뒤 다시 찾아오는지를 살펴야 지역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고객여정은 ‘발견→탐색→방문→체류→소비→관계→재방문’으로 이어진다. 검색과 지도에서 지역을 발견한 사람이 운영시간과 주차, 가격과 예약 정보를 확인하고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현장에 도착한 뒤에는 식사와 체험, 휴식과 숙박이 연결되어야 한다. 귀가한 뒤 지역상품을 다시 구매하거나 다음 계절에 재방문하면 한 번의 방문이 지속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5년 4분기 자료에서도 인구감소지역의 체류인구는 등록인구의 약 4.8배에 달했다. (행정안전부 생활인구 산정 결과) 지역이 주목해야 할 대상은 주소를 둔 주민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시간을 쓰고 돈을 쓰며 관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농업·관광·상권·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다
책의 3부는 농업·관광·상권·유휴공간을 따로 살리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농산물을 원물로만 판매하는 대신 음식과 체험, 교육과 숙박, 배송과 구독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관광객도 명소만 둘러보게 하지 말고 시장과 음식점, 지역상품과 공연을 하나의 목적지 상권 안에서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유휴공간을 활용할 때도 건물부터 짓지 말아야 한다. 누가 문을 열고, 어떤 고객이 찾아오며, 어떤 상품으로 운영수익을 만들지 먼저 정해야 한다. 저자들은 사업계획서에 준공일보다 첫 유료 고객이 오는 날을 먼저 적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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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돈·운영의 흐름을 관리하라
이 책의 실천 도구인 ‘지역 작동 지도’는 관광지와 시설의 위치만 표시하는 지도가 아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들어와 어디에서 머물고 빠져나가는지, 소비가 어느 점포와 생산자에게 돌아가는지, 예약·정산·고객관리를 누가 맡는지를 한 장에 겹쳐 보는 진단 도구다.
저자들은 지역의 지속성을 사람·돈·운영의 세 흐름으로 판단한다. 사람이 찾아와도 돈을 쓰지 않으면 사업자는 버티기 어렵다. 돈이 투입돼도 운영자가 없으면 고객과 거래관계가 쌓이지 않는다. 세 흐름이 이어지는 단절 지점을 찾아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지역사업의 첫 단계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의 역할도 분명히 구분한다. 검색어와 카드, 통신과 리뷰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이동과 불편을 읽고, 인공지능으로 여러 사업 대안을 빠르게 비교할 수 있다. 다만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원과 선정, 사업 중단의 판단까지 기술에 맡겨서는 안 된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지역의 운영주체가 맡아야 한다.
2026년 8월 24일 발행된 이 책은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대형 사업 하나를 제안하지 않는다. 한 점포가 영업시간을 바꾸고, 한 생산자가 체험을 열며, 한 운영자가 고객에게 다시 연락하는 작은 변화가 반복될 때 지역의 습관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사람이 다시 찾고, 사업자가 다음 상품을 준비하며, 행정이 성과가 확인된 곳에 자원을 더할 때 지역은 예산으로 유지되는 대상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생활권으로 바뀐다. 『지방소멸 시대, 지역은 어떻게 다시 작동해야 하는가』는 인구감소 시대에 지역을 바라보는 질문부터 다시 쓰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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