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의 상인은 생성형 AI로 상품 소개문과 홍보 영상을 만들고 고객 문의에 대응한다. 다른 지역의 상인은 사진 한 장을 온라인에 올리는 일도 외부 업체에 맡긴다. 어느 지자체는 인구·관광·상권 데이터를 분석해 지원 대상과 사업 우선순위를 정한다. 반면 지난해 계획서의 지역명과 숫자만 바꿔 다시 제출하는 곳도 있다.
사용하는 AI 서비스는 비슷하지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전혀 다르다. 지역의 다음 경쟁력은 AI를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지역의 일과 생활에 얼마나 깊이 연결했는가에 따라 갈린다.
인터넷과 장비 다음에는 ‘활용 격차’가 남는다
그동안 디지털 격차 정책은 컴퓨터와 스마트기기, 통신망을 보급하는 데 집중했다. 주민이 디지털 서비스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에는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
AI에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답변 가운데 틀린 내용을 어떻게 가려낼지, 지역의 자료와 결합해 어떤 결과물로 만들지를 알아야 한다. 검색창을 열 수 있는 능력과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능력은 같지 않다.
국가통계연구원이 소개한 디지털 문해력 분석에서도 시 지역보다 군 지역이, 수도권보다 지방이 디지털 정보 이용과 활용에서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중·고령층의 기술 이용 역량이 지역 차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가 빠른 농촌과 소도시에서는 기존의 디지털 격차가 AI 활용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엠아이넥스트 김용한 대표는 지역 현장에서 AI 교육과 컨설팅을 진행하며 기술보다 활용 장면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주민들은 AI를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일에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농민에게는 복잡한 작동 원리보다 병해충 정보를 확인하고 농산물 판매 문구를 만드는 경험이 필요하다. 시장 상인에게는 매장 소개, 택배 안내, 외국인 고객 응대처럼 오늘 바로 써볼 수 있는 활용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번의 교육보다 지역 안에 남는 사람이 중요하다
지역의 AI 역량은 교육 인원만 늘린다고 축적되지 않는다. 두 시간짜리 특강을 듣고 박수를 치며 돌아가도 다음 날 업무가 이전과 같다면 지역에는 아무런 변화가 남지 않는다.
김 대표는 여러 교육 현장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교육 시간에는 참여자들이 홍보문구와 이미지를 곧잘 만들지만, 강사가 떠난 뒤 오류가 생기거나 새로운 업무를 만나면 활용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AI 교육의 성패는 강의 당일의 만족도가 아니라 한 달 뒤에도 누군가 계속 사용하고 있는가에서 확인해야 한다”며 “상인회, 주민자치회, 관광협의체, 농업기술센터, 중간지원조직 안에 동료의 질문을 받아주고 활용 사례를 축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가 모든 지역에 상주할 수는 없다. 한두 명의 현장 리더가 배운 내용을 동료와 다시 사용하고, 실패한 과정까지 기록하며, 지역에 맞는 업무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AI 활용 경험이 개인의 노하우로 끝나지 않고 조직의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
교육 횟수가 아니라 달라진 업무를 측정해야 한다
AI 사업의 성과를 교육 횟수, 참여 인원, 장비 보급 대수로 평가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집계하기 쉬운 숫자지만 주민과 현장의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통시장 상인이 홍보물을 만드는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농가가 온라인 판매에 필요한 콘텐츠를 스스로 제작하게 됐는지, 관광조직이 방문객 질문을 분석해 새로운 여행상품을 만들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공무원이 반복 문서작업을 줄이고 주민 상담과 현장 점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는지도 중요한 지표다.
김 대표는 “AI 교육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많은 기능을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방식”이라며 “지역이 반복해서 겪는 문제 하나를 고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야 다른 업무로 확산된다”고 말했다.
지역 간 AI 격차는 거대한 시스템을 가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AI를 구경하고 교육을 수료하는 지역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반복해서 사용하는 지역 사이에서 더 빠르게 벌어진다.
장비는 예산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과 현장 조직의 활용 역량은 반복적인 실습과 시행착오, 지역 안에서 서로 돕는 구조를 통해서만 쌓인다. 지역의 다음 경쟁력은 장비 보관실이 아니라 주민과 현장 조직의 손에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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