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난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뜻이 같다고 주문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농가는 수확할 때 팔아야 하고, 급식 현장은 정해진 날 정해진 양을 받아야 한다. 생산자에게 좋은 날과 구매자에게 필요한 날 사이의 간격을 누가 좁힐 것인가. 지역 먹거리 정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방향과 식탁의 조건은 다르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10월 20일 공개한 식량주권 관련 자료는 생산·가공·유통·소비의 연결을 다뤘다. 10월 14일 열린 전담팀 회의에서는 정부의 곡물 매입·비축과 실제 소비 수요의 연계, 학교급식과 공공급식 등을 통한 국산 곡물 이용 방안이 논의됐다. 같은 위원회가 10월 20일 발표한 친환경농업 관련 자료에서도 안정적인 소비처와 공공급식 기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두 자료는 정책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지역 농산물 구매를 새로 의무화했다거나 지원사업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국산 농산물, 지역 농산물, 친환경 농산물도 같은 범주가 아니다. 다만 생산을 늘리는 과제와 꾸준히 소비하는 조건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지역 먹거리 운영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방의 일이 줄지는 않는다

급식 현장에서 식재료를 고를 때는 산지만 볼 수 없다. 손질 상태와 크기, 보관 방식, 납품 시각, 조리에 필요한 시간이 함께 맞아야 한다. 농가가 정성껏 기른 농산물이라도 주방이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어긋나면 다음 주문을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상품이라는 설명과 계속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판단은 다르다.

가령 지역의 제철 채소를 정기적으로 공급하려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수확량이 많은 주간에만 구매를 요청하면 식단과 인력이 이미 정해진 주방은 대응하기 어렵다. 반대로 구매자가 규격과 물량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생산자가 감당하기 힘든 선별과 폐기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성의를 더 요구하기보다, 식단을 확정하기 전에 생산 전망과 사용 계획을 나누는 일이 먼저다.

판로를 연결하는 것은 명단이 아니라 시간표다

실무에서는 공급 가능한 농가의 명단보다 함께 쓰는 수요 달력이 유용할 수 있다. 언제 어떤 품목을 어느 범위까지 공급할 수 있는지, 구매자는 언제 주문을 확정하는지, 변경은 언제까지 가능한지를 적는 방식이다. 모든 물량을 미리 확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확정할 수 있는 부분과 아직 불확실한 부분을 구분해야 서로의 준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작게 시작하는 판단도 필요하다.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연결하기보다 생산과 조리 조건을 맞추기 쉬운 품목부터 반복 공급을 시험할 수 있다. 이때 성과는 참여 농가 수나 첫 주문 금액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약속한 납품이 지켜졌는지, 추가 손질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다음 식단에도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공공급식을 연결할 때에는 해당 기관의 구매 절차와 위생·품질 기준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이 적용되는 계약 조건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어갈 수 있도록 규격과 검수 기준, 연락 창구를 문서로 남기는 일은 홍보보다 눈에 덜 띄지만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공급의 빈틈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먹거리 공급에는 날씨와 생육 상태에 따른 변동이 있다. 지역산 사용 목표만 높이고 부족할 때의 대안을 정하지 않으면 부담은 납품 담당자와 주방에 집중될 수 있다. 대체 가능한 품목과 변경 통보 시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조정 책임을 함께 정해야 한다. 안정적인 판로는 한 번도 문제가 없는 거래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방법이 있는 거래다.

중간에서 연결하는 조직의 역할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생산자를 소개하고 주문을 전달하는 데 그칠 것인지, 물량 조정과 규격 협의, 공급 이력을 관리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달라진다. 물류와 소분, 품질 관리에 드는 비용을 보이지 않는 봉사로 남겨 두면 연결은 오래가기 어렵다. 필요한 기능과 비용을 먼저 드러낸 뒤 누가 맡을지 판단해야 한다.

지역 먹거리의 가치는 축제장의 한 번의 구매에도 있지만, 매일 차려지는 평범한 식사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산을 쓰자는 구호를 얼마나 크게 내거느냐가 아니다. 농가가 다음 생산을 준비할 수 있고, 주방이 다음 식단을 안심하고 계획할 수 있는가다. 지역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판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역을 지탱하는 일상의 관계가 된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용한 박사 · 엠아이넥스트·로컬넥스트·국비공모랩 대표. 지역상권·로컬관광·국비공모·스타트업 및 AI·AX 분야에서 컨설팅과 강의,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식량주권 강화를 위한 생산-가공-유통-소비 연계방안 논의 ·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친환경농업 2배 확대 위한 정책방안 논의

로컬넥스트뉴스로컬넥스트뉴스 | [로컬넥스트 칼럼] ⑭ 지역 먹거리는 매일의 식단에서 판로를 얻는다지역 먹거리의 판로는 좋은 농산물을 알리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산과 급식의 시간표를 맞추고 공급의 빈틈을 함께 관리할 때 반복되는 식사가 지역경제의 수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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