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의 간판을 남기는 일과 그 가게의 일을 이어가는 일은 얼마나 같을까. 건물과 상호는 그대로여도 재료를 고르는 눈, 손님의 주문을 이해하는 방식, 거래처와 약속을 지키는 습관이 사라지면 가게는 다른 곳이 된다. 지역의 장수 점포를 바라볼 때 창업 연도와 대표 상품 옆에 놓아야 할 질문이 있다. 다음에는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

이 질문은 자녀에게 가게를 물려주자는 권유에 그치지 않는다. 운영자의 뜻과 여건을 존중하면서도, 지역에 쌓인 기술과 관계를 다음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묻는 것이다. 승계 여부를 결정할 권리와 승계를 준비할 기회는 함께 보장돼야 한다.

지정 이후의 시간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7월 27일 백년가게 150개사와 백년소공인 150개사를 새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발표는 업력뿐 아니라 경영 지속가능성, 제품·서비스 경쟁력,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한다. 오래 영업했다는 사실과 앞으로 운영할 역량을 함께 살피는 제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기부가 같은 해 2월 26일 별도로 게시한 백년소상공인 재지정 모집 공고도 확인할 수 있다. 신규 지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지정 절차도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각 점포의 기술 전수나 후계자 준비까지 완료됐다고 볼 수는 없다.

정책이 오래된 가게를 지역의 자산으로 인정했다면, 그다음에는 그 자산이 어떤 사람과 일의 형태로 남을지 살펴야 한다. 현판과 소개글은 고객에게 가게를 알릴 수 있다. 다음 운영자가 실제 일을 배울 시간과 책임 범위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손기술과 함께 판단의 이유를 넘겨야 한다

가상의 오래된 식품 가공점을 떠올려 보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배합 비율만 알려준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수 있다. 원료 상태가 달라졌을 때 무엇을 먼저 살피는지, 작업을 멈춰야 하는 때는 언제인지, 주문을 더 받아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배워야 한다. 이는 특정 점포의 실태가 아니라 전수 과정에서 점검할 항목을 보여주는 예시다.

기술을 기록할 때에는 작업 순서뿐 아니라 예외 상황을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 실패했을 때 어디를 확인하는지, 품질 차이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고객에게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해야 한다. 문서와 영상은 출발 자료이고, 실제로 해본 뒤 숙련자가 확인해 주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거래 관계도 서류 한 장으로 이전되기 어렵다. 원료 공급자와 결제·납품 조건을 확인하고, 단골 고객에게 바뀌는 점과 유지되는 점을 안내하며, 새 운영자가 직접 응대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운영자가 모든 결정을 계속 쥐고 있으면 배우는 사람은 일을 해도 경영을 연습하기 어렵다.

넘겨받는 사람의 생활도 계산해야 한다

승계를 미담으로만 설명하면 다음 운영자의 현실을 놓치기 쉽다. 가게에서 일하며 얻을 수입, 필요한 노동시간, 설비를 고치는 비용, 가족과 생활할 여건을 함께 따져야 한다. 지역의 전통을 지킨다는 보람만으로 생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어받지 않겠다는 선택도 실패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지역 지원조직은 참여 의사가 있는 점포를 대상으로 작은 인수인계 계획부터 도울 수 있다. 처음에는 함께 작업하고, 다음에는 일부 업무를 맡기며, 이후에는 일정 기간 독립적으로 판단하도록 단계를 나누는 방식이다. 단계마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확인하며 어떤 비용을 부담하는지 정해 두어야 한다.

가족 안에 희망자가 없다면 직원이나 지역의 다른 창업 희망자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 수 있는지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운영권과 자산, 상호 사용에 관한 결정은 당사자들의 동의와 구체적인 조건 확인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지역이 급하다고 개인의 재산과 진로에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성과도 지정 점포 수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전수 시간을 확보했는지, 다음 담당자가 맡을 수 있는 업무가 늘었는지, 기존 운영자가 쉬는 날에도 약속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 과정의 변화가 있어야 승계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의 오래된 가게는 과거를 보여주는 배경이면서 지금도 누군가의 생활을 지탱하는 일터다. 그 가치를 오래 남기려면 가게를 구경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할 사람의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 기술을 배우고 책임을 맡으며 자신의 생활을 꾸릴 여지가 있어야 다음 운영자도 지역에 남을 이유를 찾는다.

오래된 간판을 기념하는 일에서 멈추지 말자. 그 아래에서 다음 사람이 어떤 일을 배워 어떤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인지까지 준비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는 연혁판에 적힌 시간만큼이나, 오늘의 일을 내일 다른 사람이 이어갈 수 있는 조건 속에 남는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용한 박사 · 엠아이넥스트·로컬넥스트·국비공모랩 대표. 지역상권·로컬관광·국비공모·스타트업 및 AI·AX 분야에서 컨설팅과 강의,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백년소공인 300개사 신규 지정 · 중소벤처기업부, 2026년 백년소상공인 모집(재지정) 공고

로컬넥스트뉴스로컬넥스트뉴스 | [로컬넥스트 칼럼] ⑨ 오래된 가게에는 다음 주인이 필요하다오래된 점포의 연혁을 알리는 일만으로 지역의 기술과 단골 관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역정책은 가게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서 나아가 다음 운영자가 배우고 판단하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시간을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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