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이 단순한 ‘할인상품권’에서 지역으로 소비를 움직이는 정책수단으로 바뀐다.
정부는 10월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통시장·지방상권 소비 촉진을 위한 온누리상품권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표현한 대로 18년 만의 큰 틀 개편이다. 이번 개편을 할인율 몇 퍼센트가 오르고 내리는 문제로만 보면 중요한 변화를 놓친다.
정부가 바꾸려는 것은 온누리상품권의 사용처가 아니라 소비자의 ‘행선지’다.
전통시장에서 쓰면 10%, 지방 골목상권은 8%
가장 체감되는 변화는 차등 혜택이다.
개편안은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의 구매 단계 선할인을 7%에서 5%로 조정하고, 실제 어디에서 사용했는지에 따라 추가 환급을 제공한다.
전통시장에서 쓰면 구매할인 5%에 소비환급 5%를 더해 총 10%, 지방 골목상권에서는 5%에 3% 환급을 더해 총 8%, 수도권 골목상권에서는 구매할인 5%만 적용하는 방식이다.
![[로컬넥스트뉴스 이슈] 온누리상품권 18년 만에 큰 틀 바뀐다…전통시장 10%, 지방 골목상권 8% ‘차등 혜택’](/api/uploads/articles%2F3dea7ead-0d58-4a5b-9de8-9d03f3948d4c.png)
그동안에는 어느 지역에서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같은 할인혜택을 받았다.
앞으로는 소비자가 “온누리를 어디에서 쓸 것인가”에 따라 혜택이 달라진다.
정부가 전통시장과 지방을 선택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왜 바꾸나…3조9500억원 중 65%가 이미 전통시장으로 갔다
정부가 온누리에 힘을 싣는 데는 숫자가 있다.
2025년 온누리 사용액은 3조95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65%인 2조6000억원이 전통시장에서 사용됐고, 전체 사용액의 57%인 2조2600억원은 지방에서 쓰였다.
14세 이상 주민등록인구의 약 38%에 해당하는 1,868만명이 디지털 온누리 앱에 가입했고, 판매된 상품권의 85% 이상이 6개월 안에 소비됐다. 흥미로운 조사도 있다. 정부 자료에서는 온누리 사용자의 95.9%가 대형마트에서 하던 소비의 일부를 전통시장으로 옮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39.5%는 소비액의 20% 이상을 전통시장으로 전환했다고 응답했다.
상품권이 단순히 기존 시장 고객에게 할인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 장소를 바꾸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이번 개편의 배경에 있다.
골목형상점가는 오히려 문턱 높인다
이번 정책에서 다소 역설적인 부분도 있다.
온누리상품권 혜택은 확대하지만 온누리를 사용할 수 있는 골목형상점가 지정은 더 까다롭게 만든다.
2025년 3월 골목형상점가 점포 밀집기준을 2,000㎡ 안에 30개에서 15개로 완화한 뒤 지정지역은 2024년 381곳에서 2026년 8월 말 2,130곳으로 5.6배 늘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지역화폐 사용처와 중복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상권까지 지정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앞으로는 시·군·구 재정자립도에 따라 상위 25% 지역은 30개, 중위 50%는 20개, 하위 25%는 15개 이상으로 지정기준을 달리한다. 전통시장 반경 1㎞와 인구감소지역은 15개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지방정부가 조례로 기준을 더 낮추는 방식도 폐지하고, 지정 전 중소벤처기업부와 사전 협의하도록 할 계획이다.
온누리의 외연을 무작정 넓히기보다 취약상권에 혜택을 다시 집중하겠다는 신호다.
시장에서 쓰고 끝나는 상품권에서 ‘여행의 출발점’으로
이번 개편에서 필자가 더 주목하는 부분은 관광이다.
정부는 지방에서 일정 금액 이상 디지털 온누리를 사용하면 지역명소 입장권, 숙박권, 지역쇼핑몰 할인쿠폰 등을 지방정부가 추가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전주남부시장에서 온누리를 사용한 소비자가 한옥마을 관광과 숙박으로 이동하도록 시장 소비→관광→체류를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전통시장 지원정책에서 자주 놓쳤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시장 안에서 얼마를 할인해 줄 것인가에 집중하면 소비는 시장 안에서 끝난다. 시장 주변의 관광지, 음식점, 숙박, 골목 콘텐츠까지 연결하면 한 사람의 방문이 지역 전체의 소비로 번질 수 있다.
온누리가 생활인구를 움직이는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생기는 대목이다.
외국인은 자신의 결제앱으로 시장에서 QR 결제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도 손본다.
정부는 방한 관광객이 자국에서 사용하던 결제앱으로 전통시장 온누리 가맹점의 QR코드를 찍어 결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자료에서는 알리페이를 온누리 QR과 연계할 경우 세계 40여 개 결제앱까지 자동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구상이 제시됐다.
전통시장이 외국인에게 낯선 결제공간이라는 장벽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온누리상품권 앱부터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방식보다 그들이 이미 쓰는 결제수단을 시장 안으로 가져오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네이버·카카오·배달앱까지 연결한다
판매 채널도 달라진다.
정부는 지도 앱에 온누리 가맹점 위치를 표시하고 네이버·카카오와 외국인용 내비게이션에 시장 정보를 확대할 계획이다. 카카오톡 채널을 활용한 고객응대 AI, 홍보·마케팅 지원도 추진한다.
상생배달앱에서 온누리나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사업에는 2027년 예산안 기준 1,200억원이 제시됐다. 공공기관 임직원의 복지포인트를 온누리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온누리가 종이상품권 시대의 ‘시장 결제수단’에서 지도 검색→방문→결제→배달→재구매를 연결하는 디지털 소비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온누리와 지역화폐는 통합보다 역할을 나눈다
이번 개편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는 지역화폐와의 관계다.
정부는 두 상품권을 하나로 합치지 않는다.
지역화폐는 지역 주민의 생활권 소비, 온누리는 전국 소비자를 전통시장과 지방상권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로 구분한다. 정부 자료에서도 지역화폐의 주요 사용업종은 음식점·교육·의료인 반면, 온누리는 농축수산물과 소매업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 구분은 앞으로 지역상권 정책에서도 중요하다.
지역 주민이 동네에서 돈을 쓰게 하는 정책과 외부 사람이 지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드는 정책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온누리상품권 개편의 가장 큰 변화는 할인율이 아니다. ‘싸게 사는 상품권’에서 ‘사람을 전통시장과 지방으로 움직이게 하는 상품권’으로 목적이 구체화됐다는 데 있다.
다만 숙제도 남는다.
할인이 커졌다고 사람이 지방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전통시장에 갈 이유, 그곳에서 먹고 볼 것, 주변에서 하루 더 머물 이유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온누리 8%와 10%는 사람을 움직이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한 번의 결제를 지역 관광과 체류, 재방문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은 이제 지방정부와 상권의 몫이다.
이번 개편의 성패도 할인율이 아니라 온누리 한 번의 결제가 지역에서 얼마나 긴 소비와 체류를 만들어내느냐에서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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