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형상점가 지정 열풍에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관계부처가 10월 1일 내놓은 ‘전통시장·지방상권 소비 촉진을 위한 온누리상품권 개편 방안’을 보면, 정부는 골목형상점가 지정기준을 2027년부터 대폭 손질할 계획이다. 현재 지자체 조례를 통해 기준을 더 낮출 수 있는 방식은 폐지하고,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점포 밀집기준을 차등 적용한다.
겉으로 보면 점포 숫자를 조정하는 행정기준 변경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골목형상점가를 많이 지정하는 정책에서 온누리상품권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선별하는 정책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30개에서 15개로 낮췄더니 2,130곳으로 늘었다
변화의 출발점은 지난해다.
정부는 2025년 3월 2,000㎡ 안에 필요한 소상공인 점포 수를 기존 30개 이상에서 15개 이상으로 낮췄다. 인구감소지역은 10개 이상이면 지정할 수 있도록 문턱을 더 낮췄다.
이후 골목형상점가는 빠르게 증가했다. 2024년 381곳이던 누적 지정지역은 2025년 1,564곳, 2026년 8월 말 2,130곳으로 늘었다. 불과 2년 사이 5.6배다. 정부는 지정 확대 과정에서 온누리상품권과 지역화폐의 사용처가 중복되고,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상권까지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문턱을 낮추자 정책의 사각지대는 줄었지만 다른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골목형상점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해진다. 지정 자체가 곧 소비지원 정책의 입구가 된다.
앞으로는 ‘30개·20개·15개’가 기준이다
개편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정자립도다.
재정자립도 상위 25% 시·군·구는 2,000㎡ 안에 소상공인 점포 30개 이상, 중위 50%는 20개 이상, 하위 25%는 15개 이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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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반경 1㎞ 이내 상권과 인구감소지역도 15개 이상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현행 인구감소지역의 10개 이상 기준과 비교하면 이 부분은 오히려 강화된다.
정부가 재정자립도를 들고 나온 이유도 숫자로 설명한다. 2025년 기준 재정자립도 상위 20% 지역의 점포당 월평균 매출은 4,936만원이지만 하위 20%는 1,998만원이었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상권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판단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재정여건이 좋은 지자체에서는 지정 문턱이 높아지고, 재정이 취약한 지방은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을 적용받는 구조다.
더 큰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중기부 개입’이다
현장에서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앞으로 지방정부가 골목형상점가를 지정하기 전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사전협의하는 절차가 도입된다. 거짓·부정한 방법으로 지정됐거나 지정 후 점포 밀집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중기부가 지정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취소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전통시장 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방안까지 담겼다.
지금까지 골목형상점가가 지역의 판단과 조례를 중심으로 확대돼 왔다면 앞으로는 중앙정부의 관리가 상당히 강해지는 구조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관리하려는 이유는 온누리상품권의 정책 목적과 연결돼 있다.
2025년 온누리상품권 사용액 3조9500억원 가운데 65%인 2조6000억원이 전통시장에서 사용됐고, 전체 사용액의 57%가 지방에서 쓰였다. 정부는 앞으로 온누리를 지역화폐와 경쟁하는 범용 상품권이 아니라 전통시장과 지방 취약상권으로 외부 소비를 끌어오는 정책수단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많이 지정하면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번 개편에는 납득할 부분이 있다.
골목형상점가가 전국 어디에서나 손쉽게 지정되고 온누리 사용처가 계속 넓어지면 전통시장과 취약상권에 집중돼야 할 정책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 온누리와 지역화폐가 사실상 같은 생활상권에서 경쟁하는 상황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재정자립도 하나로 지역 골목의 현실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재정이 좋은 지자체 안에도 쇠퇴하는 오래된 골목이 있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도 이미 관광객과 소비자가 몰리는 활성상권이 있다. 시·군·구 전체의 재정지표가 개별 골목의 취약성을 대신 판단하는 순간 또 다른 획일화가 생길 수 있다.
매출 감소율, 공실률, 유동인구 변화, 상인 고령화, 생활인구와 외부방문객 비중 같은 실제 상권지표를 함께 보는 보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기존에 지정된 2천여 골목형상점가를 새 기준으로 어떻게 관리할지도 아직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개편안은 기준 미충족 시 지정취소 요청 방침을 담고 있지만, 기존 지정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경과조치까지는 이번 자료에서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골목형상점가 정책의 다음 단계는 지정 숫자 경쟁이 아니다.
어디를 골목형상점가로 지정했는가보다 그 지정이 정말 취약한 상권에 사람과 소비를 불러왔는가를 따져야 한다.
정부가 문턱을 다시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 새로운 문턱이 지역의 현실을 얼마나 정교하게 읽어낼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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