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규제개선 건의서는 주민의 반복 민원과 기업의 사업 지연을 제도 언어로 바꾸는 문서다. 행정안전부가 2026년 10월 21일 공개한 상반기 성과를 보면 지방정부가 발굴한 법령 개선 건의는 1,117건으로 전년 동기 815건보다 302건 늘었다. 관계 부처가 개선 필요성을 수용한 과제는 일부 수용을 포함해 120건이다. 숫자는 발굴 활동이 커졌음을 보여주지만, 주민이 변화를 체감하려면 수용 이후 법령과 조례가 실제로 바뀌는 경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발굴 1,117건과 수용 120건은 같은 성과가 아니다
행정안전부 자료는 수용 120건을 전년 동기 88건보다 32건 증가한 결과로 제시한다. 분야는 국민생활 불편, 소상공인·자영업자 영업규제, 생명·안전 보호, 사회적 약자 애로 등 민생 영역과 서비스산업, 신산업, 지역 전통산업으로 나뉜다. 지자체가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조례·규칙은 자체 정비를 지원하고, 법령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소관 부처와 협의하는 구조다.
여기서 ‘수용’은 곧바로 시행 완료를 뜻하지 않는다. 일부 수용도 120건에 포함되고, 법률·시행령·부령 개정이나 자치법규 정비가 뒤따라야 하는 과제가 섞여 있다. 중앙부처 협의가 끝나도 입법 절차와 현장 안내가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성과표에는 발굴, 검토, 수용, 개정 착수, 공포, 시행, 현장 확인을 구분해야 한다. 건의 건수만 합산하면 병목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자치법규는 중앙 법령 변화와 함께 점검한다
이번 발표는 상위 법령에서 삭제한 규제가 조례에 남아 있거나, 새로 위임한 사항이 조례에 반영되지 않은 경우를 전 지방정부 대상으로 정비한다는 계획을 함께 제시했다. 등록 후 5년이 지난 지방 규제 2만7,658건도 재검토 대상으로 지정됐다. 제도가 중앙에서 바뀌어도 접수창구의 서식과 담당자의 안내가 그대로라면 현장에서는 규제가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지방규제혁신위원회 운영지침은 조례·규칙에 규정된 규제의 적합성 검토와 정비방안 마련, 이해관계인과 전문가 의견 청취를 위한 근거를 둔다. 실무에서는 법령 조문 대조만으로 끝내기보다 민원 처리기간, 보완 요구 횟수, 사업자가 제출하는 증빙, 담당 부서의 위험 우려를 함께 기록해야 한다. 폐지할 규제와 안전을 위해 유지할 기준을 구분하는 근거도 이 과정에서 생긴다.
수용 이후를 관리하는 세 개의 장부가 필요하다
첫째는 제도 장부다. 과제별 소관 부처, 관련 법령·조례, 수용 범위, 다음 절차와 예정일을 적는다. 둘째는 현장 장부다. 해당 규제로 불편을 겪는 주민·기업의 사례, 처리시간과 비용, 개선 뒤 확인할 지표를 남긴다. 셋째는 책임 장부다. 중앙부처 협의 담당자와 지자체 조례 정비 담당자, 현장 안내를 바꿀 부서를 연결한다. 세 장부가 있어야 담당자가 바뀌어도 과제가 처음부터 다시 설명되지 않는다.
국비공모와 지역산업 정책에도 이 구분이 중요하다. 규제개선 과제를 사업비 확보 논리로만 포장하면 제도 변경과 실증사업의 책임이 섞인다. 법령 개선은 권한 있는 기관의 절차로, 실증은 기간·대상·안전장치를 갖춘 사업으로 설계해야 한다. 공모 제안서에는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가정보다 현재 가능한 범위와 개정이 필요한 범위, 실패할 경우의 대안을 나눠 적는 편이 타당하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발굴한 자치법규 개선 과제를 연말까지 개정 완료할 수 있도록 정비 상황을 점검하고, 법령 건의 과제는 하반기 추가 발굴과 부처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자체가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발표된 건수보다 자기 지역 과제의 현재 위치다. 수용 통보를 받은 날이 아니라 주민의 신청 절차와 기업의 운영 조건이 실제로 달라진 날이 규제혁신의 완료일이기 때문이다.
규제혁신은 규제를 적게 만드는 경쟁이 아니다. 보호해야 할 공익은 지키면서 불필요한 의무와 낡은 절차를 증거로 걷어내는 일이다. 발굴 건수는 출발을 보여주고, 수용은 방향을 정한다. 개정·시행·현장 확인을 한 줄로 연결하는 관리가 있어야 1,117건의 목록 가운데 지역의 삶과 산업을 실제로 바꾸는 과제가 남는다.
기자 소개|김용한 김용한 기자는 경영학 박사이자 경영컨설턴트로, 지자체·공공기관의 정책기획과 국비공모, 창업·마케팅 분야 교육·컨설팅을 수행해 왔다. 현재 엠아이넥스트와 국비공모랩 대표로 지역 현장의 문제를 실행 가능한 사업과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료와 확인 기준
- 행정안전부 지방규제혁신 추진성과 · 발표 2026-10-21
- 국가법령정보센터 지방규제혁신위원회 운영지침 · 발표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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