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대응사업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청년은 일자리와 주거를 찾아 인접 도시를 오가고, 의료·교통·돌봄 서비스도 한 시·군만으로 완결되기 어렵다. 그동안 지방소멸대응기금의 광역지원계정은 인구와 재정여건을 반영한 산식으로 자동 배분됐다. 올해 처음 투자계획 평가를 통해 일부 재원을 차등 배분하면서 시·도의 역할을 묻는 방식이 달라졌다.
광역계정 2500억원 가운데 500억원을 평가한다
행정안전부가 10월 12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방소멸대응기금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인구감소지역에 배분되는 기초지원계정 7500억원과 서울·세종을 제외한 시·도에 배분되는 광역지원계정 2500억원으로 나뉜다. 이 기본 구조는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에 근거한다.
광역지원계정의 올해 활용 방식은 산식 배분 1500억원, 투자계획 평가 기반 배분 500억원, 지역활성화투자펀드 조성 500억원이다. 평가 도입은 광역계정 전액을 경쟁 방식으로 바꿨다는 뜻이 아니다. 500억원에 대해 시·도가 세운 투자계획을 보고 차등 배분하는 절차가 처음 추가된 것이다.
평가의 대상은 사업 목록이 아니라 광역의 역할이다
이번 평가는 시·도가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사업을 발굴하고 기획했는지, 시·군 사이의 연계와 협력을 이끌었는지, 광역 차원의 성과를 만들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여러 시·군의 요구를 한 문서에 묶는 것만으로는 연결성이 생기지 않는다. 공통 문제와 공동 수혜자, 시·군이 각각 맡을 실행 역할이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정착 사업이라면 교육시설 하나를 어디에 둘지만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광역은 산업별 인력수요와 통근권을 분석하고, 시·군은 주거·생활서비스와 기업 현장을 연결할 수 있다. 공동 교통망이나 의료 전달체계처럼 경계를 넘는 사업도 이용자의 실제 이동경로를 기준으로 역할을 나눌 때 광역사업의 이유가 생긴다.
연계사업에는 공동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시·군 협력은 업무협약 한 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기관이 총괄하고, 기초단체별 예산과 인력을 어떻게 배치하며, 성과가 부진할 때 누가 조정할지를 정해야 한다. 공동 데이터의 기준과 갱신 주기, 시설·서비스 운영비 분담 방식도 투자계획 단계에서 드러나야 선정 이후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시설을 공동 이용할 경우 접근성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거점과 가까운 주민만 혜택을 얻는다면 광역이라는 이름과 실제 수혜범위가 어긋난다. 이동지원, 순회서비스, 온라인 연계처럼 거리를 보완하는 장치를 함께 설계하고 지역별 이용률과 대기시간을 따로 측정해야 주민 체감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사업 간 시간표를 맞추는 일도 광역의 책임에 가깝다. 한 시·군은 공간을 먼저 조성했는데 다른 지역의 인력양성과 교통 연결이 늦어지면 주민은 완성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착공·모집·운영 시작 시점을 공동 일정표로 관리하고, 선행 조건이 지연될 때 대체 경로를 정해야 개별 사업의 성과가 서로 기다리다 사라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성과지표도 경계를 넘어야 한다
개별 시·군의 참여 인원과 집행률을 더한 값은 광역성과의 일부일 뿐이다. 시·군 사이 서비스 격차가 줄었는지, 공동 인프라의 이용범위가 넓어졌는지, 청년과 기업의 이동이 정착이나 고용으로 이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사업마다 성과가 나타나는 시간이 다르므로 단기 이용지표와 중장기 변화지표를 구분할 필요도 있다.
평가 기반 배분이 곧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강해지면 보기 좋은 신규사업이 늘고 기존 사업의 운영 문제는 가려질 수 있다. 시·도는 새 시설을 제시하기 전에 기존 자산과 사업을 연결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하고, 기초단체는 지역 현장에서 확인한 수요와 운영조건을 광역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평가 결과를 다음 연도 계획에 돌려주는 체계도 필요하다. 목표 대비 이용률이 낮은 지역, 협력이 멈춘 단계, 예상보다 커진 운영비를 기록하면 다음 투자계획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다.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숨기기보다 원인과 조정 내용을 함께 남겨야 평가가 일회성 등급이 아니라 광역정책의 학습 장치가 된다.
이번 변화가 지방정부에 주는 신호는 분명하다. 광역계정의 차등 배분을 준비하려면 ‘우리 지역에도 필요하다’는 주장보다 왜 여러 시·군이 함께해야 하는지를 먼저 답해야 한다. 주민의 생활권, 공동 실행구조, 지역 간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가 하나로 이어질 때 광역사업은 규모가 큰 사업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이 된다.
자료와 확인 기준
-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 광역지원계정 평가 기반 차등 배분’ 보도자료 · 발표 2026-10-12
- 국가법령정보센터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 · 발표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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